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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제목 광야묵상2
작성자 김부옥 작성일 2008-09-03 18:02:37

황량한 광야에 엎드린 풀들



제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
빨리 못쓰고 있습니다.

 

카이로는 포화상태 
외곽도시 신도시 건설, 광야를 개발, 나일강 끌어 도시 확대

광야는 죽음의 공간 
물이 없고 그늘은 습도가 낮아 쾌적, 낮엔 50도 고온 타이어가 찢어짐

도시외로 추방은 결국 사형을 의미

 

가이드도 조용하면

또다시 시작되는 광야 묵상

과거 이집트의 영광은 없고 가난과 먼지를 쓴 건물들

하나님을 모르는 애굽 백성의 오늘, 가난

하나님을 쫓은 이스라엘은 부를 누리는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가난속의 생존, 연명. 인간적 정은 있으나 발전이 더딘

과거를 팔아 살아가는 사람들

 

주님이 주시는 부의 근간은 조직력이다.

광야에 이어선 송전탑을 보며

통치자를 통해 부의 근원의 수도꼭지를 틀어 나라전체에 물이 돌게 하신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주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황량함, 광막함을 찍으려 셔터를 누른다.

그러나 멍청한 카메라는 뭘 담는지 이해를 못한다.

간간이 엎드린 풀들, 수줍게 웃는 이집트 청년의 옆얼굴은

가장 이집트인다운 형상의 아크나톤 왕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흐르는 그들의 시간은 우리와 다른 빛깔인 것 같다.

 

사막과 광야의 짐승같은 숨결, 동굴 속 허덕임같은 환청이 들린다.

이제는 버려진 땅, 웬지 그러나 낯설지 않은

이 광야는 늘 내 삶의 일부였고 내안에 있었다.

바람에 이는 흙먼지, 


카이로는 포화상태 외곽도시 신도시 건설, 광야를 개발, 나일강 끌어 도시 확대 
광야는 죽음의 공간 물이 없고 그늘은 습도가 낮아 쾌적, 낮엔 50도 고온 타이어가 찢어짐 
도시외로 추방은 결국 사형을 의미


가이드도 조용하면 
또다시 시작되는 광야 묵상 
과거 이집트의 영광은 없고 가난과 먼지를 쓴 건물들 
하나님을 모르는 애굽 백성의 오늘, 가난 
하나님을 쫓은 이스라엘은 부를 누리는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가난속의 생존, 연명. 인간적 정은 있으나 발전이 더딘 
과거를 팔아 살아가는 사람들 


주님이 주시는 부의 근간은 조직력이다. 
광야에 이어선 송전탑을 보며 
통치자를 통해 부의 근원의 수도꼭지를 틀어 나라전체에 물이 돌게 하신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주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황량함, 광막함을 찍으려 셔터를 누른다. 
그러나 멍청한 카메라는 뭘 담는지 이해를 못한다. 
간간이 엎드린 풀들, 수줍게 웃는 이집트 청년의 옆얼굴은 
가장 이집트인다운 형상의 아크나톤 왕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흐르는 그들의 시간은 우리와 다른 빛깔인 것 같다. 


사막과 광야의 짐승같은 숨결, 동굴 속 허덕임같은 환청이 들린다. 
이제는 버려진 땅, 웬지 그러나 낯설지 않은 
이 광야는 늘 내 삶의 일부였고 내안에 있었다. 
바람에 이는 흙먼지, 이 메마른 타는 햇볕 아래 펼쳐진 건조한 침묵은 
내쫓긴 하갈과 이스마엘의 고통처럼, 밀려난 자의 눈물, 오랜 후의 낯선 이웃으로 다가온 
핏줄의 아픔이다. 
왜 광야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가 왜. 
이스마엘은 그후 어떻게 되었나 
약대와 양떼, 역청 구덩이가 후손을 부하게 해주었지만 
이삭의 후손에 대한 분풀이는 계속된다. 왜 저만 약속의 자손이냐고 
무기력한 아버지와 안주인 사라의 앙칼진 눈길,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 
광야에서 이스마엘의 신음소리에 귀를 막는 하갈의 울부짖음, 통곡소리가 들린다. 
쫓겨난 이스마엘, 선택받지 못한 자, 엉뚱하게 태어나 이삭의 걸림돌이 된 
서자의 눈물을 본다. 


주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도 자비하셨다. 
지금은 비켜나 있어라 
너의 그 눈물을 내 막대기로 쓰리라 
광야의 목마름을 밝혀 샘을 보게 하시고 오아시스에 이르게 하신 자 
감찰하시는 여호와 브헬라헤로이 
그 추억을 더듬어 만든 이슬람 
나도 그분의 감찰 아래 있단 말이다. 
너만 선택한 거 아니다. 
번창함, 자기 길을 감, 이지러진 창조주의 기억으로 부인할 수 없는 여호와에 대한 본능적 경배를 했던 이스마엘, 
그들을 향한 주님의 거룩한 슬픔을 느낀다. 가슴이 저려온다. 
어느 때입니까 
저들을 부르시는 날이 
언제나 아픈 이름 하갈, 
뭔가 해보겠다고 덤비다 생겨난 내 인생의 시행착오, 오점들 
내 육적 소욕의 상처, 아직 죽지 않은 성화되지 않은. 옛사람의 흔들림으로 생겨난 끌고 가야할 혹들. 애써 외면했지만 끊을 수 없는 인연의 질긴 상처 
역사의 뒤안길에서 눈 흘기는 그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회한을 삼킨 아브라함 
아버지의 아픔을 알기에 이웃에게 너그러웠던 이삭. 
광야에 흔들리는 먼지 쓴 나무들처럼 떨칠 수 없는 기억들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물 한 부대를 지워 보내며 사라의 분노를 잠재워야 했던. 


광야는 오늘도 한숨 지으며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아픔이다. 
눈감을 때까지 묻어둔 눈물이다. 
왜 우리 삶의 하갈은 불러들인 혹이 되어 발목을 잡고 안방을 차지하려 하는가 
부를 때는 언제고 아들을 낳아준 나를 내쫓아? 
사라 작사 하갈 작곡 아브라함의 비가, 
내 안의 사라와 하갈과 아브라함, 질투와 교만과 비탄의 하모니 
내쫓기 전 평화는 없다. 
결코 동거할 수 없던 역사의 줄기 
갈라져 훗날 해일로 만난다. 
역할 분담에 불과했던. 
이삭, 선택의 역사는 수많은 채찍질의 연단을 받아야 했고 결코 선민의 우쭐댈 자리가 아니었다. 예정된 스케줄에 따라 끌려가야 할 길이었다. 


이제 그들을 향해 가라 
모델은 끝났다. 이스라엘의 역할은.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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